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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SF

빼앗긴 자들 | 어슐러 K. 르귄

※감상에 책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미리니름(or 스포일링)이 될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어 보시기 바랍니다.



빼앗긴자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어슐러 K. 르귄 (황금가지,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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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슐러 르 귄의 헤인우주 SF는 일종의 사고 실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둠의 왼손, 유배행성, 로캐넌의 세계, 환영의 도시... 이 책들은 다양한 사회와 관습을 보여주었고, 빼앗긴 자들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회를 보여주네요.

 역자의 말을 보면 1970년대 사회분위기가 많이 반영되어있다고 하는데, 지금 봐도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네요. 물론 지금은 그 당시 만큼 아나키즘 같은 것이 유행하지는 않지만요.

 원제목은 'The Dispossessed', 다음에서 찾아보니 '1. 쫓겨난, 퇴거당한,  2. 재산[지위]을 빼앗긴' 이라고 나오는군요. 작중에서 소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에 관련된 것일까요? 뭔가를 소유해야만 빼앗길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지...


▒오도니안, 오도니즘, 아니키스트, 아나키즘 

 배경은 서로가 달이자 지구로서 돌고 있는 세티 태양계의 두 행성입니다. 우라스와 아나레스 이지요. 애초부터 세티인들이 살았던 곳은 풍요로운 자연을 지닌 우라스이었고, 그 곳에서 아나키즘의 일종인 오도니즘이 급격히 유행하자 세계 회의를 거쳐 원하는 오도니안(오도니즘을 따르는 사람들)을 아나레스로 이주시켜 주지요.

 이 책 또한 일종의 사고 실험 같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자본주의가 득세를 하였으니까요. 게다가 저 자신도 아나키즘이 뭔지 실제로 느끼지는 못하기도 했고; 머리로는 대충이나마 뭔지 알겠지만, 느낌이 안오지요. 그런데 오도니안들은 새롭지만 혹독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사상을 마음껏 펼치게 된 것이고요. 외부 간섭없이 말이죠.

 책의 배경은 이렇게 아나레스와 우라스가 최소의 접촉만 유지한 체 150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아나레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오도니즘에 따라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요. 사실 처음 읽을때부터 혼란스러웠던것이 바로 이런 점이었지요. 법도 없고, 화폐도 없다는 것만 놓고 보면 원시사회인데, 이 사람들은 폭력도 모릅니다. 그런데 화는 낼 줄 알고요.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전부 자유연애가 기본인거 같고, 그런데 반려라고 해서 1부1처 관계도 존재하고요. 법이 없으니 이 관계가 강제적인 것도 아니고;


 어슐러 르 귄의 세계는 항상 혼란을 주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네요. 그래도 어둠의 왼손보다는 나았으려나요.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만약 아나레스가 혹독한 행성이 아니었다면 오도니즘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애초에 우라스 사람들이 오도니안들에게 그 세계를 안 주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렇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풍요로운 세상에서 잉여물이 생긴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생기지 않았을까요.

 혹은 혹독한 기근이 좀 더 많이 찾아오는 행성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소유하지 않고 나누는 삶이지만, 책에서도 기근이 들자 굶주린 사람들이 다른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지 않고 소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요.

 아나레스의 오도니안들이 그 들의 사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런 자비롭지도 않지만 혹독하지도 않은 행성의 환경 덕이 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것은 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다보니 드는 생각일수도 있고... 항상 이런 류의 생각은 내 경험에 바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제 생각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사실 이 책도 작가의 상상이고요.ㅋ


▒내 머리 위에 이런 달이 있다면? 

 주인공 쉐벡은 물리학자 이지요. 동시성 이론이란 것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아나레스에서는 그의 물리학이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우라스의 물리학자들에게 신세계를 열어주지요. 그래서 그는 연구의 완성을 위해 우라스도 넘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 시련을 끊임없지 찾아오네요. 그렇지 않으면 주인공이 아니겠지만요. 쉐벡은 지식의 소유라는 것을 모르는 오도니안 이지만, 우라스의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지요. 겉으로는 환영하는 듯이 행동하지만 결국 그에게서 원하는 것은 우라스의 무기가 될 수 있는 동시성 이론의 완성형 입니다.

 그들 안에서 쉐벡은 난생처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숨겨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요. 그리고 자신이 여기에 왜 왔나, 방황도 하고요. 그러다가 결국 주변사람들이 포장해서 보여준 우라스의 진짜 속을 보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자 했던 우라스의 일반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되지요. 그리고 그 들 중에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시위를 준비하던 마에다라는 인물의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좀 길어서 전부 옮기는 것은 안되지만;

'150년동안 아나레스라는 오도니안의 달이 머리위에 있다는 것은, 그게 그냥 환상이나 이상주의자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줄여도 줄인게 아니군요; 이 책을 보면서 인상적인 내용이 몇몇 있었지만, 이 대사를 따라올 만한게 없었네요. 자신들이 그리는 이상의 세계가 저 달 위에 있다면 무슨 느낌일까요. 보이지만 갈 수 없는 곳에 말이죠. 그게 환상도 아니고 꿈도 아니라면...


▒다이브랩

 아나레스라는 사회가 좀 더 특별한 이유는 아무래도 이 다이브랩이라는 컴퓨터 때문이겠지요. 무슨 원리인지는 안 나오지만, 만능 컴퓨터가 아닌가 싶네요.

 이 다이브랩은 평소에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배속해 주고, 새로 태어나는 사람에게 비어있는 이름을 지정해 주지요. 일자리 배속은 그렇다고 치는데, 이 이름 지정해주는게 참 독특합니다. 아나레스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그 순간 자신만 가지고 있지요. 그 순간 자신의 이름은 자신 외에 안가지고 있고, 자신이 죽어야 그 이름이 새로 태어나는 사람에게 지정됩니다. 이러니 성도 필요 없고요.

 근데 이 설정이 약간 뒤에 나와서;; 쉐벡이 룰락과 만나는 장면에서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지요. 어떻게 둘이 이름만 듣고 알아챈건지;; 갓난아기때 헤어졌다고 해놓고 말이죠. 다행이 읽다보니 이해되었지만.;;ㅅ;ㅋ


 다이브랩은 정착 초기에 아나레스의 언어인 '프라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고요. 이러니 만능 컴퓨터지요; 우리는 에스페란토 어라는 게 있던가요. 그런데 이것은 실제로 일상생활에 쓰이는 언어가 아니니까요; 우리 세계는 이미 자신만의 언어를 무수히 가지고 있고요. 그에 비해 아나레스는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언어로 사회가 구성되었고요.

 이런 세계관 구성이 어슐러 르 귄의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앤서블의 시작/

 헤인 우주에서 빼놓은 수 없는 것이 바로 앤서블이지요. 어떻게 이 앤서블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물질은 광속 이상으로 전달되지 않지만, 정보는 그 순간 전달 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앤서블 이지요. 이 앤서블 덕분에 헤인 우주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진행된다고 봐도 되겠지요.

 항상 앤서블이 당연하게 나왔기 때문에 이것의 시작이 등장하는 소설은 없나 했는데, 바로 빼앗긴 자들이 그 책이었습니다. 쉐벡이 연구하는 동시성 이론이 바로 앤서블의 시초이지요.


 처음 어슐러 르 귄의 헤인 우주를 접했을때, 정보만 순간 전달할 수 있는 앤서블이 그렇게 특별한 것일까 생각을 했었지요. 좀 많이 보다보니 이제는 어느정도 느낌이 온다 싶었는데, '빼앗긴 자들'에 와서야 그게 왜 중요한지 제대로 느낌이 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데 정보의 동시전달이라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지요. 그것이 범 우주적인 세계라면 더더욱이고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는 소설이겠지만, 헤인 우주관을 재미있게 보는 사람으로서는 앤서블의 시작이 나온다는 것만 하여도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래저래 쓰다보니 좀 길어졌네요. 게다가 새로운 방식으로 리뷰하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이 방식으로 쓰면 시간이 더 줄어들 것 같지는 않네요;;

 어슐러 르 귄의 팬이기 때문에, 팬심 가득한 글이 되었습니다. 비판? 음... 뭐, 자기 마음에 들면 비판 안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건 보이면 쓰는것이죠. 후후

 아직까지 어슐러 르 귄의 작품이 절 실망시킨적이 없군요. 책 말미에 '헤인 시리즈 작품 목록'을 보니, 아직 제가 안본 것도 몇가지 있네요. 그중에는 헤인 우주관인지 몰랐던 것도 있고요. 'The Telling'인가, 이 것은 번역판이 있으려나... 안되면 나중에 원서라도 구해서 봐야겠어요. 영어 공부도 해볼겸.ㅋ 



2012.12.25 오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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