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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Mystery

비밀(HIMITSU) | 히가시노 게이고

※감상에 책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미리니름(or 스포일링)이 될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어 보시기 바랍니다.


비밀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창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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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보기 전에 줄거리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때 영화로 나온 것을 봤었거든요. 기억하기로는 일본 영화가 공중파를 타고 나오는게 드물었는데, 영화 '비밀'이 그때 나왔던것 같네요. 히로스에 료코라는 배우가 딸역으로 나와서 유명하기도 했었고요.(그러고보니 유부녀 된지도 한참됐군요;;)

 이미 책 내용이나 영화 내용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도서관에 가도 빌려보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변덕을 부려서 한번 봐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봤네요.ㅋ 책이라는게 줄거리만 보는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왠지 어릴때 봤던 책을 커서 다시 본 느낌이기도 하고요.


▒짧은 오해의 부분

 예전에 한창 판타지 소설에 빠져있을때 적응 못하는 종류가 하나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서로 영혼이나 인격이 바뀌는 종류였지요. 비슷한걸로 환생물이긴 환생물인데,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종류의 것도 그렇고요. 누군가를 어쩔수없이 속이고 오해사지 않게 행동하는 내용을 보면 적응이 잘 안돼요. 물론 그냥 잘 적응한다는 식의 내용으로 나오면 상관없는데, 이미 형성되어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면 제가 부끄러워진다고 해야 할까요; 안타깝기도 하고, 주변에서 알아채지 못하도록 행동하는 내용을 보다보면 왠지 모르게 제가 오그라드는 느낌이라서요.;

 그게 그런 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서; 영화 같은것도 그런 종류는 잘 못봐요. 그래서 TV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그런 식의 내용이 나오면 좋건 나쁘건 간에 관심없는척 방으로 들어가버리기도 했습니다.ㅋ 우리나라 영화 '체인지' 같은게 가장 비슷한 내용이려나요.;ㅁ;a

 이 이야기를 왜 썼냐면, 예전에 영화 '비밀' 볼때도 마찬가지였거든요. 어릴때부터 이랬던지라, 그때도 딸이랑 엄마의 영혼이 서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잠시 다른데 가서 딴짓하고 왔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영화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물론 다른 부분도 어릴때 봐서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요;;ㅋ

 이 책을 빌려보지 않았던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요즘에는 어떻게 어떻게 참고 보다보니 괜찮긴 하더라구요. 참는게 잘 안되면 일부러 책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리기도 하고요. '이 등장인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역시 딸과 아버지가 헤메는 부분이 이 책에도 존재합니다. 아버지는 계속 아내 이름인 '나오코'라고 무의식중에 부르고, 딸(혹은 아내?)도 어른스런 말투를 구사하고요. 아마 이 부분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었다면 한 며칠쯤 구석에 박아놨다가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말이죠.ㅋ

 다행이 생각외로 그 부분이 짧았습니다. 이건 남편인 헤이스케의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된 덕도 있는것 같아요. 만약 아내인 나오코나 딸인 모나미의 시점에서 진행이 되었다면 이렇게 짧았을리가 없었겠지요. 남의 인생에 스며들어가야하는 중요한 순간이었을 테니까요. 아마 장르도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바뀌지 않은 인격으로 보기 

 줄거리를 대충 아는 만큼, 작정하고 비딱하게 소설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애초에 딸과 어머니의 영혼을 바뀌지 않았다!' 라고 말이죠.

 이렇게 보니 억지를 부리면 딸인 모나미가 아버지를 위해 아내인척 하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더군요. 부부끼리만 아는 연애시절 이야기도 어머니가 딸에게 미리 해줬을지도 모르는 것이구요. 요리나 가사에 대한 것도, 이미 나오코가 모나미에게 전부 가르쳐둔 상태였다고 나오니까요. 초등학교 6학년은 어린 나이이지만, 그런 만큼 순수하게 작정하고 다른사람의 역할에 몰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모나미가 사고 직후 나오코로서 깨어날때 처음 본 것은 헤이스케가 아내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입니다. 처음 깨어나며 본 장면이 아버지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열하는 것이었다면, 딸로서 순수하게 어머니인척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학교에 적응하는 것도 별 문제없었고요. 물론 학교 선생이 '모나미가 너무 어른스러워 졌어요.' 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지만, 편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일찍 어른스러워 지기 쉬운법이니까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입시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도 있을것 같고요. 게다가 모나미가 잘하던 수학 공부를 나오코도 잘 할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있고요.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모나미가 장해보입니다. 각종 연기에 노력도 대단하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이렇게 작정하고 봤는데도 중간을 넘어가다보니 결국 인격이 바뀐게 맞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인격이 바뀌었지만 젊은 육체의 영향을 받아서 생각하는 감성까지 변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죠. 이게 이 책의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느껴졌네요. 물론 끝까지 비딱하게 보려면 '어쨌든 안바뀌었어!' 라고 보는 수도 있지만요.ㅋ


▒바뀌지 않은 인격 두번째(?) 

 아마 '비밀'의 가장 큰 반전이면서 유명한 부분은 바로 이것 이겠지요. 딸인 모나미가 정말 돌아온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비딱하게 보는 것을 그만두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 때문이지요. 모나미가 어머니인 나오코를 연기하는 것이라고 볼 때는 그 허점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했습니다. 게다가 '이정도는 엄마한테 듣지 않았을까? 가르침 받지 않았을까?' 라고 억지 생각을 많이 해야 했지요.
 하지만 나중에 나오코가 모나미를 연기한다고 봤을 때는 너무 자연스럽더라구요. 이미 또래의 행동 패턴이나 생각은 학창 생활을 하면서 파악이 됐을 터이고, 그런 만큼 연기하기도 편할것이구요. 게다가 중간중간 깨어난다는 것은 한숨 돌리기도 편하고... 모나미의 인격이 처음 돌아오는 계기도 헤이스케가 그녀를 딸로서 대하려고 마음 먹은 직후이기도 하고요.

 이야기의 엔딩에서 진실이 뭔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저 헤이스케가 짐작만 할 뿐이지요. 독자도 알아서 짐작해야 하고...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단편이라도 어디 존재한다면 보고 싶네요. 그럴리는 없지만요.ㅋ 그래도 상상해보고 싶습니다. 세월이 흘러 헤이스케가 임종을 맞이한다면, 그 옆에서 모나미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말에요. 헤이스케에게 뭐라고 할까요. 조그맣게, 아무도 못듣게 귓속말을 해주고, 헤이스케가 살며시 미소라도 지으면서 임종을 맞이한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