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책을 보다보면 원제목이 중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 책도 그런 경우이네요. 마지막에 역자의 말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분신'이라고 하면 분신(焚身)을 많이 떠올리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레몬'으로 바꿔서 출판했다고 하는데요. 읽는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을것 같아요. 원작자의 의도도 있고... 레몬이 작품에 등장하는 의미있는 상징물이기는 하지만, 제목으로 등장할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물론 역자분과 출판사는 고민이었을테고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왠만하면 감상내용을 숨김 박스에 넣지 않고 쓰겠지만 이건 어쩔수가 없네요;; 뭔가 쓰려고 해도 미리니름이 안되는 부분이 없을것 같으니-_-;
그리고 별 느낌 없이 읽었다면 궂이 이렇게 숨기고 쓰려고 하지 않았을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오래간만에 재미있에 읽은 책이니 다른 분들도 쉽게 내용을 안다면 재미없을것 같기도 하고요.ㅋ 그리고 제가 미리 역자의 말을 읽었다가 몇가지 키워드를 미리 알고 보는 바람에 재미가 반감된 탓도 있어서;; 이왕이면 책소개라든지 그런거 안보고 보시는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간단한 검색으로도 이 책에 대한 내용이 수두둑 쏟아져 보이지만요;;
여담이지만, 이런거 보면 책도 안읽고 감상문을 쓸 수 있는 현실이 참 아쉽네요.; 과제때문에 그런다든지 하는거 볼때마다 안타깝고요. 다른건 몰라도 소설같은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읽지 않으면 그 느낌을 확실하게 느낄수가 없을텐데 말이죠...
원제인 '분신' 이 뜻하는 것은 나눌 분分에 몸 신身을 붙인 한자이지요. 또다른 나라고 할 수 있을테고, 곧 내용에서 다루는 클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미 제목에서 중요한 키워드를 말하고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게 참 신기하네요. 클론을 소재로 한 소설이니만큼 그로인한 사회적 파장이라든지, 영화 '아일랜드'처럼 클론의 반항이라든지 같은 소재가 가장 빈번하고 자극적일텐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책을 그렇게 풀어내지를 않지요. 이런 의외성때문에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인상깊게 보는거 같습니다.ㅋ
이야기는 마리코와 후타바, 두 여주인공의 시점을 번갈아 가면서 진행하지요. 두 주인공은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주변의 인식도 다릅니다. 하지만 몸만은 둘다 같지요.
서로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의심을 품고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 움직이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갖가지 상황에 휘말리고요. 둘다 어머니를 잃고 그런 행동을 할 생각을 하게 된점도 비슷하다면 비슷할것 같구요.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소녀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끝까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당연히 끝까지 함께하며 두 소녀를 지켜주고 뒤에서 따뜻하게 지켜봐주는 역할 이겠거니 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시모조는 마리코를 가여워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학술적인 가치에 홀려있었지요. 마리코가 그녀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네요.
후타바의 조력자였던 와키사카 고스케는 진심으로 그녀를 돕고 싶어했지만, 그녀를 제대로 돕지 못했다는 점은 어쩔수가 없을것 같아요,. 독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고요. 잘 될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하니까요.ㅋ
소설의 내용이 엄청나게 꼬여있는것도 아니어서 전체적인 내용을 꿰뚫어보는것은 사실 어렵지 않지요. 하지만 작가의 역량이 이럴때 발휘되는게 아닌가 싶어요. 마리코의 어머니의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혼자 헛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구요.ㅋ 물론 어이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것을 숨기고 싶어서 그런거였지만요.ㅋ
마리코의 아버지인 우지이에는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인물이고요.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그가 들은 생각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런 자신을 자신이 용서하지 못했을 테고요.
소설의 마지막에 마리코와 후타바가 만나 서로 레몬을 교환하는 것은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적절한 끝맺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ㅋ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모양인지;; '여기서 서로를 확인하고 끝내는 것이 가장 적절하네' 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아 이 작가라면 여기서 뭔가 더 이끌어내서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물론 워낙 인상깊에 보았기 때문에 자그마한 아쉬움이긴 하지만ㅋ
아키코는 후타바를 혐오스럽게 볼 수 밖에 없었지요. 비록 와키사카 고스케가 후타바의 뺨을 때리는 것을 보았을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뺨을 감싸쥐었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혐오감은 깊어질수밖에요. 몇십년을 자신의 존재를 하나로 인식하면서 살아왔는데, 젊은 시절과 완전히 같은 육체를 가진 존재가 내 앞에 있다니.
도플갱어를 보면 얼마 안있어서 죽게 된다는 말은 그런 혐오감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ㅋ
그래서 마리코와 후타바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서로 만날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둘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마리코의 조력자이자 의학도인 시모조도 아니고, 후타바의 조력자이자 원본의 아들인 와키사카 고스케도 아니지요. 그들을 키운 우지이에나 고바야시도 아니고요. 비록 다른 환경에서 20년동안 다르게 커왔지만, 그 둘만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위에 써놓은 것처럼 멀리서 폭발하는 건물을 배경으로 풀밭위에서 만나는 둘의 엔딩이 아쉽기도 하지만, 동시에 만족스럽습니다. 둘의 만남에 갖가지 우연들이 섞여있지만, 소설적인 장치라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둘이기에 그렇듯 거기서 만나게 된것이니까요.
사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서 편중된것이 사실이네요(..;) 하지만 이런 맛에 이런 감상을 쓰는거 아니겠어요.ㅋ
도서관에서 '유성의 인연'을 빌리려다가 없어서 대신 빌린 책이었는데, 정말 잘 빌린것 같아요. 우울한 기분을 회복시켜주는 좋은 자양강장제였습니다.ㅋ